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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세계사] 蘇 우주 진출 앞서가자… 美 달 착륙으로 역전했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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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세계사] 蘇 우주 진출 앞서가자… 美 달 착륙으로 역전했죠


①독일 출신 과학자 베른헤르 폰 브라운(중간)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오른쪽)에게 로켓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최첨단 무기 ‘V2′를 개발한 폰 브라운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일했어요. 그는 미국의 우주 기술을 끌어 올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답니다. /NASA
 ①독일 출신 과학자 베른헤르 폰 브라운(중간)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오른쪽)에게 로켓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최첨단 무기 ‘V2′를 개발한 폰 브라운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일했어요. 그는 미국의 우주 기술을 
    끌어 올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답니다. /NASA

지난 21일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어요.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우주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우주로 나아가는 일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어요. 로마 시대 소설 '진실한 이야기'에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달나라에 불시착하는 여행이 나올 정도지요. 이렇게 꿈같았던 우주여행은 '과학의 세기'라고 한 20세기에 현실이 됐어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섰어요. 각 진영의 대표로 세계 무대를 주도한 미국과 소련은 이제 우주 진출을 놓고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소련의 압도적 우위로 시작

미국과 소련의 관심이 우주로 향한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개발한 'V2′ 장거리 탄도미사일이었어요. 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V2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날아오른 뒤 불과 6분 만에 300㎞ 떨어진 런던에 큰 타격을 입혔죠. 미국과 소련은 V2처럼 비행체가 높고 멀리 올라가 우주에 진입하기만 하면 강력한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국은 V2 미사일을 개발한 베른헤르 폰 브라운(1912~1977)과 그의 엔지니어 126명을 미국으로 데려갔어요. 소련 역시 독일 기술자 2000여 명을 데려갔죠.

양국의 로켓 개발 경쟁은 소련의 압도적 승리로 시작했어요. 1957년 10월 4일 19시 28분 34초, 소련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엄청난 굉음과 불꽃을 뿜으며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어요.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거예요. 소련은 같은 해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라이카'라는 개를 태워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우주에서 생명체가 머물 수 있다는 걸 입증했죠. 스푸트니크호의 성공으로 기세등등해진 소련은 대외적으로 '우주 기술에 뒤떨어진 미국은 신뢰할 만한 우방이 못 된다'고 선전했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은 크게 추락했어요.

미국, 자존심 회복 위해 NASA 창설

여러모로 뒤처진 줄 알았던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할 정도로 사회적 충격을 줬어요. 이를 뒤집기 위해 1958년 2월 미국도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어요. 하지만 '익스플로러 1호'는 무게가 스푸트니크 1호의 6분의 1에 그쳤고, 같은 해 3월 쏘아 올린 '벵가드 1호'는 1m도 못 올라가고 2초 만에 폭발했어요. 이를 본 소련 정부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소련이 미국의 기술 고문이 되어줄 의향이 있다"고 비웃었대요.

미국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고 연간 1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수학·과학·외국어 교육 강화에도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이에 뒤질세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 2주년 기념일이었던 1959년 10월 4일에 '루니크 3호'를 발사해 달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합니다. 이 사진으로 인류는 달의 반대편을 처음 볼 수 있었어요.

인류 최초 우주 비행

다음 단계는 인간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것이었어요. 미국은 1961년 1월 인간 이전에 실험 삼아 '햄'이라는 침팬지를 소형 우주선에 태워 보냈어요. 햄은 우주에서 16분 정도 비행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곧 소련은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같은 해 4월 12일 소련의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1934~1968)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거예요. 그는 1시간 48분간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귀환했어요. 비록 인공위성 발사는 소련에 선두를 내줬지만 사람만큼은 먼저 우주에 보내고 싶었던 미국은 '보스토크 1호'의 성공에 크게 낙담합니다.

이에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우주 전쟁에서 판도를 뒤집기 위해 소련보다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는 2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달 탐사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어요. 마침내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합니다. 당시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 현장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고, 전 세계 6억명이 집에서 TV 생중계를 시청했대요.

이날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2012)은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어요. 달에서 21시간을 보낸 암스트롱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명언도 남겼답니다. 암스트롱은 지구에 무사히 귀환했지만, 외계 세균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약 3주간 병동에 있었대요.

경쟁의 끝은 '공동 실험'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꽂은 성조기는 미·소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최종 승리를 거뒀음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아요. 1974년 소련은 달 착륙 계획 폐기를 정식 선언하며 패배를 인정했죠.

미소 우주 경쟁은 1975년 '아폴로·소유스 시험 계획'이란 공동 도킹 실험으로 훈훈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양국은 우주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구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협력하기로 한 거예요. 미국 아폴로호와 소련 소유스호는 44시간에 걸쳐 우주에서 도킹을 진행했고, 양측 우주 비행사들은 서로 국기와 선물을 교환하고 상대방 우주선을 견학했답니다. 지난 4월 양국 비행사들은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유인 우주 비행 60주년을 기념해 함께 우주 비행을 하기도 했어요.

[아담한 키 덕분에 발탁된 가가린]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비행선 공간에 맞는 157㎝의 아담한 키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류 최초 우주인이 됐어요. 출발 전 가가린은 아내에게 "누구도 내일 자동차에 치여 죽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담담한 심정과 두 딸을 강하게 키워달라는 당부가 담긴 유서를 남겼어요. 성공적인 우주 비행 후 그는 "우주는 매우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르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이후 외교 사절로 전 세계를 돌던 그는 1968년 비행 훈련 중 추락해 34세로 요절했습니다. 그의 고향인 소도시 '그자츠크'는 '가가린'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②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성조기에 경례를 하고 있어요. /NASA
 ②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성조기에 경례를 하고 있어요. /NASA
③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발사 장소로 가는 버스에 탑승한 장면. /NASA
 ③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발사 장소로 가는 버스에 탑승한 장면. /NASA
④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우주로 보낸 개 ‘라이카’. /위키피디아
 ④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우주로 보낸 개 ‘라이카’. /위키피디아
정효진 양영 디지털고 역사 교사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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