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곰이지만 대나무가 주식··· 유전자 변형돼 고기맛 못느껴
그래픽=안병현
2000만년전 곰科서 나와 독자 진화
먹이 경쟁 피하려 대나무 주식 삼아
다른 곰처럼 고기 먹을 수 있지만
고기맛 '글루탐산' 못느끼도록 진화
대나무 쥐고 껍질 쉽게 벗기기 위해
손목뼈 확장돼 여섯째 손가락 됐죠
올해는 판다가 중국 밖 세계에 알려진 지 150주년 된 해입니다.
프랑스의 신부이자 자연학자 아르망 다비드가 1869년에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판다를 발견했지요.
그는 판다 외에도 100종이 넘는 곤충과 포유류를 발견해서 과학적인 보고서를 만들고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 샘플을 보냈습니다.
수천만 년 넘는 기간 단일 종으로 살아온 판다는 귀여운 모습 때문에 전 세계에 팬이 많지만,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동물입니다.
◈ 2000만년 전 그대로의 '살아있는 화석'
판다는 귀여운 곰처럼 생겼지만, 너구리와도 닮았습니다.
판다의 중국 이름(大熊猫·큰 곰고양이)에는 곰[熊]과 고양이[猫]라는 한자가 각각 들어가 있죠.
판다의 분류를 놓고 '곰이냐 고양이냐 너구리냐' 같은 논쟁은 발견 이후로 계속됐습니다.
2010년에야 유전자 검사를 포함한 분자생물학 연구가 이뤄지면서 곰과(科)에 속한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논쟁이 벌어졌던 이유는 판다(곰과 판다속 대왕판다종)가
2000만 년 전에 곰과에서 가장 먼저 분리되어 나와 독자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름을 들어본 북극곰, 불곰 등은 모두 '큰곰속' 이지만 각각 종이 다릅니다.
판다속에서 살아남은 '판다' 는 대왕판다 단일종입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어떤 곰 종류와도 생물학적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판다는 '살아있는 화석(화석으로 발견되는 종과 닮았으면서 연관된 친척 종이 없는 것)' 입니다.
⊙ 200만년 전부터 대나무 먹기 시작
야생 판다는 대나무의 잎과 껍질, 그리고 대나무의 어린 순을 주로 먹습니다.
가끔 다른 풀이나 줄기를 먹기도 하고 새나 쥐, 동물의 시체를 먹기도 하지만 섭취하는 음식의 99%는 대나무입니다.
그런데 판다는 잡식성인 곰과 동물입니다. 고기를 먹고 소화시킬 소화기관이 갖춰져 있어요.
오히려 식물의 셀룰로오스를 소화하는 기능은 고기를 소화하는 능력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대나무를 아무리 먹어도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키기 때문에 효율은 극도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몸은 통통하죠. 어른 판다는 몸무게가 100~150kg 정도 나가는데 이런 몸매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10~15kg에 달하는 대나무를 부지런히 먹어야 합니다.
육식이 가능한 판다가 대나무를 먹게 된 이유는 생존 경쟁을 위해 다른 동물이 잘 안먹는 먹이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판다는 고기 맛의 핵심인 글루탐산(흔히 MSG로 알려진)의 맛을 유전자 변형 때문에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이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은 이유인지,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다 보니 굳이 고기 맛을 알 필요가 없어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느릿느릿 굼뜬 판다의 행동 방식은 효율이 낮은 먹이로 인해 몸의 대사 속도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 진화 경로 알려주는 '여섯 번째 손가락'
판다는 대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쉽도록 여섯 번째 손가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여섯 번째 손가락은 대나무를 잘 쥘 수 있도록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엄지가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볼 수 있는 동물은 별로 없습니다.
판다는 생존을 위해 사람의 손처럼 잘 쥘 수 있는 손가락 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너무 늦었죠.
판다가 처음 곰 무리에서 분리되었던 2000만년 전이 아니라 대나무를 주된 먹이로 삼은 200만년 전에 뒤늦게 '엄지' 역할을 할 손가락이 필요해졌으니까요.
그런데 이미 이 시기 판다에게 사람의 엄지에 해당하는 뼈는 엄지처럼 진화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판다는 손목뼈를 확장시켜 사람의 엄지 역할을 하게 진화합니다.
이런 진화의 경로를 밟아서, 판다는 손가락이 6개가 되었습니다.
판다의 여섯 번째 손가락은 임시변통의 묘를 발휘해서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줘 진화의 상징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판다는 세상의 어떤 동물들보다 명백하게 진화의 존재와 진화의 경로를 보여줍니다.
주일우·과학칼럼니스트
조선일보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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