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엘리베이터 버튼의 구리 필름, 바이러스 껍질·유전물질 파괴
세균·바이러스의 저승사자, 구리
구리는 살균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금속입니다.
구리가 세균과 접촉하면 구리 이온이 세포에
흡수되면서 세포막의 껍질을 파괴해요.
이어 구리 이온이 세포막에 구멍을 뚫어
세포의 영양분 등을 잃게 만들고,
더 나아가 대사 작용을 방해해 죽게 만들지요.
같은 원리로 구리 이온이 바이러스를 만나면
바이러스의 단백질 껍질을 파괴하고
동시에 바이러스의 RNA를 분해해 버립니다.
영국의 사우스샘프턴 대학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리 등에서 5일 이상 살아남았던 바이러스가
구리 표면(구리 함유율 60%)에서는 30분 이내에 사멸됐어요.
세균·바이러스 죽이는 비누와 손세정제
비누 분자는 물에는 잘 녹지 않지만 기름에는 잘녹는 탄화수소(CH₂) 사슬과,
물에 잘 녹는 카르복시산염(COOH)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물과 기름에 모두 잘 녹아드는 비누의 분자 구조 덕분에
비누가 인지질(인을 포함한 지방 성분)로 둘러싸인
세균의 세포막에 침투해 직접 세균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손 세정제 작용도 비슷합니다.
손 세정제의 주원료인 에탄올(C₂H6O)의 분자 구조도
물에 잘 녹는 성질과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모두 갖고 있어요.
직접 세균의 세포막을 녹여 세균을 죽일 수 있지요.
바이러스 퇴치하는 신무기, 나노 바늘
최근에는 날카로운 침(針)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망가뜨리는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발간된 과학 학술지 '네이처' 표지에는 천연 향균 물질로 알려진 단백질 '박테리오신' 의 그림이 실렸답니다.
이 물질은 특정 세균이 주변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스스로 만드는 물질인데요.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엑스선과 저온전자현미경을 통해서 관찰했더니 못처럼 끝이 뾰족한 원통형 튜브인 '박테리오신' 이
특정 세균의 표면 단백질에 달라붙으면서 세균의 세포막을 찔러 터뜨렸다고 해요.
세균·바이러스와 구리 이온 만나면
세포막·단백질 껍질 파괴돼 사멸해요
손 세정제 원료인 에탄올 분자 구조
직접 세포막 녹여 세균 죽일 수 있죠
최근 나노미터 크기의 바늘 활용해
세균·바이러스 터뜨리는 기술 등장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요.
마스크를 쓰고 손을 비누로 씻고, 알코올 소독제로 손 소독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와 손잡이엔 항균 필름을 붙이고 사람들 모인 곳을 피해서 멀찌감치 돌아가기도 하죠.
마스크로 비말(침)이 튀는 것을 막는 건 바이러스와 접촉을 막는 것이지만,
소독제나 항균제는 내 몸에 들어오기 전에 바이러스를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체에 침투(감염)하기 전에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는 다양한 원리에 대해 알아볼게요.
□ 탄소와 산소 사슬의 항균 효과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손을 비누로 잘 씻는 것입니다.
비누 분자는 물에는 잘 녹지 않지만 기름에는 잘 녹는 탄화수소(CH₂) 사슬과,
물에 잘 녹는 카르복시산염(COOH)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물에 잘 녹는 성질 덕분에 비누가 물에 잘 풀려서 거품이 많이 나는 것이고,
기름에 잘 녹는 성질 덕분에 더러운 때의 기름 덩어리들이
피부·옷 등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에요.
물과 기름에 모두 잘 녹아드는 비누의 분자 구조 덕분에
비누가 인지질(인을 포함한 지방 성분)로 둘러싸인 세균의 세포막에 침투해 직접 세균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손 세정제의 작용도 비슷합니다.
먼저 손 세정제의 주원료인 에탄올(C₂H6O)은 탄소 2개, 수소 6개, 산소 1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자 구조를 보면 산소가 있는 쪽은 물에 잘 녹고,
탄소가 있는 쪽은 기름에 잘 녹습니다.
이처럼 에탄올도 물에 잘 녹는 성질과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모두 갖고 있어서
세균의 세포막을 녹여 세균을 죽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떨까요?
바이러스는 세포막이 없는 대신 단백질이 유전 물질인 DNA나 RNA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단백질은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누나 에탄올이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에 닿으면 모양이 일그러져 활성을 잃게 돼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 안으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단백질이 있어야 하는데,
모양이 변형된 바이러스는 인체로 침투할 수가 없거든요.
세포에 침투할 수 없는 바이러스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감염력을 잃게 되지요.
바이러스는 혼자서 대사를 하지 못하고 숙주(宿主)가 되는 다른 세포에 기생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강력한 항균 금속, 구리
구리는 살균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금속입니다.
구리가 세균과 접촉하면 구리 이온이 세포에 흡수되면서 세포막의 껍질을 파괴해요.
이어 구리 이온이 세포막에 구멍을 뚫어 세포의 영양분 등을 잃게 만들고,
더 나아가 대사 작용을 방해해 죽게 만들지요.
같은 원리로 구리 이온이 바이러스를 만나면 바이러스의 단백질 껍질을 파괴하고
동시에 바이러스의 DNA/RNA를 분해해버립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구리 합금 표면에서 2시간 이상 지나면 세균의 99.9%가 죽는다고해요.
영국의 사우샘프턴 대학이 2015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리 등에서 5일 이상 살아남았던 바이러스가 구리 표면(구리 함유율 60%)에서는 30분 이내에 사멸됐어요.
구리 항균 필름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때 개발됐지만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가,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구리 이온을 결합한 마스크, 구리 필터가 들어간 공기청정기 등도 개발되고 있어요.
물론 곳곳에 붙어있는 항균 필름만 믿고 안심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구리 함유량에 따라 항균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거든요.
또 바이러스가 완전히 죽기까지는 수십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손을 타는 엘리베이터 버튼 등을 만지고나면 반드시 손 씻기를 해야 합니다.
그동안 항균 효과가 크다고 잘 알려진 금속은 은(銀) 이었습니다.
미생물이 은이온(Ag+)을 섭취하면 미생물의 DNA가 변질되면서 세포 분열이 불가능해져요.
오랫동안 은수저나 은식기가 사랑받았던 것도 이런 항균 작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은 구리보다 비싸기 때문에 마음껏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습니다.
○ 나노 바늘에 사멸하는 바이러스
최근에는 날카로운 침(針)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망가뜨리는 기술들이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발간된 과학 학술지 '네이처' 표지에는 천연 항균 물질로 알려진 단백질 '박테리오신(bacteriocin)' 의 그림이 실렸답니다.
이 물질은 특정 세균이 주변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스스로 만드는 물질인데요.
과학자들이 이 물질을 엑스선과 저온전자현미경을 통해서 관찰했더니
못처럼 끝이 뾰족한 원통형 튜브인 '박테리오신' 이 특정 세균의 표면 단백질에 달라붙으면서 세포막을 찔러 터뜨렸다고 해요.
이처럼 이론적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아주 작고 뾰족한 돌기를 가진 표면의 닿으면 터지거나 모양이 변형될 수 있어요.
이를 응용해서 높은 에너지의 플라스마(기체가 초고온 상태로 가열돼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나오는
이온을 금속·실리콘 등 재료에 충돌시켜 나노 바늘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물리적인 세균·바이러스 제거법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모든 세균은 약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내성을 갖는 수퍼 박테리아가 될 수 있는데,
이 같은 항균 과정을 거치면 그럴 우려가 없어요.
이처럼 과학계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개발해나가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재미있는 과학
-그래픽=안병현
-주일우·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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