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돌·흙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토렌트'··· 거대한 '슬라이드'도 위험
그래픽=안병현
최대 시속 40km로 쏟아지는 산사태
폭우로 토양의 결속력 약해져 생겨
국내 발생 산사태는 '토렌트'가 많아
2011년 우면산 산사태가 대표적이죠
굵은 모래와 집중호우 많아 취약해
지난 20년간 피해 면적 3배 늘었대요
54일간 이어졌던 역대 최장 장마가 끝났어요.
이 기간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도 많이 일어났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여름 집중호우로 1548건의 산사태가 발생하고 627㏊에 이르는 땅이 무너져 내렸다고 해요.
그런데 평소엔 가만히 있던 산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가 오니까 당연한 거지'라고요? 당연해 보이는 현상 뒤에도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산사태에 대해 알아볼게요.
◇한순간에 민가 덮치는 산사태
산사태는 산 중턱의 바윗돌이나 흙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말해요.
산사태 속도는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시속 20~40㎞로 한순간에 민가를 덮친다고 해요.
평소 안정화되어 있던 산 경사면이 무너지는 건 폭우나 지진 등 특별한 사건 때문에 촉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 경사면의 안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암반과 토양의 성질, 경사면의 모양과 구성, 지하수의 상태 등이 영향을 미쳐요.
일반적으로 토양 입자들은 점착력이나 마찰력으로 어느 정도 서로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토양 입자들 사이의 틈을 공극(air gap)이라고 하는데요.
집중호우로 인해 공극에 수분이 대량으로 유입되면 공극 내 수압이 올라가고 부력이 생겨서 토양 입자 사이사이의 결속력이 약화됩니다.
이를 통해 서로 잡아주는 힘이 약해지면서 경사면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거예요.
◇폭우로 안식각 줄어들면 위험
어떤 물체를 경사면에 두었을 때, 물체에는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중력)과 경사면에 붙어 있으려는 힘(정지 마찰력)이 동시에 힘겨루기를 합니다.
중력과 마찰력이 같으면 물체는 안정된 상태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만, 중력이 마찰력보다 커지면 물체가 아래로 미끄러져요. 산사태 역시 같은 원리로 일어나는 거예요.
이때 경사면에서 물체가 미끄러져 내리지 않는 최대 각도를 '안식각(安息角)'이라고 하는데요.
보통 알갱이가 매끄럽고 둥글면 안식각이 작아요. 안식각이 작다는 건 조금만 힘이 가해져도 쉽게 미끄러진다는 뜻이죠.
예컨대 아마씨나 마른 모래, 콩 등은 안식각이 25~35도로 작은 편이라서 쉽게 무너져요.
반면 알갱이가 작고 점성이 있으면 안식각이 커요.
예컨대 밀가루 같은 것은 안식각이 45도에 달하죠.
즉 안식각이 크다는 건 그만큼 안정적인 상태라는 걸 의미합니다.
산의 안식각은 토양을 구성하는 입자의 크기나 형태, 식생에 따라 너무 다양해요.
다만 보통 25~30도까지는 안정하게 경사면에 머무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공사를 하거나 산사태 위험을 측정할 때, 땅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성질과 생김새를 파악하고 그 산의 안식각이 얼마인지 측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답니다.
예를 들어 폭우 때문에 알갱이 사이사이 결속력이 약해지면 마찰력이 약해지고 안식각이 줄어들어 쉽게 산사태가 날 수 있습니다.
또 산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집을 지으면 땅의 결속력이 약해져 안식각이 작아지고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져요.
그래서 등산가들이 눈사태의 위험을 예측하기 위해 반드시 안식각을 측정한다고 하네요.
안식각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알갱이의 경우 알갱이들을 높은 곳에서 조금씩 떨어뜨려서 원뿔 모양으로 쌓이게 만들고,
더 이상 그 모양이 무너지지 않을 때 바닥과 경사면의 각도를 측정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산사태 피해
산사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슬럼프(slump)는 두꺼운 점토질 퇴적층이 덮고 있는 경사면이 하부 침식으로 움푹 꺼지는 현상입니다.
슬라이드(slide)는 흙이 경사면을 미끄럼 타듯 빠르게 밀려오는 현상이고, 플로(flow)는 진흙 등이 강물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현상을 말해요.
토렌트(torrent)는 암석 파편이나 식물 잔해를 포함한 토석류(土石流)가 계곡 등을 따라 빠르게 쓸려 내려오는 현상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사태의 대부분은 토석류가 민가를 덮치는 토렌트 형태이지요.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가 대표적인 예예요.
최근에는 땅 속 깊은 곳 지하수의 움직임때문에 토양 전체가 천천히 아래로 이동하는 '땅밀림' 현상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슬라이드와 비슷한 현상인데, 발생 규모가 크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산지의 경사가 급하고 응집력이 낮은 굵은 모래(돌이 풍화돼 만들어진 흙)로 이루어진 곳이 많아 산사태에 취약한 편이에요.
또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고 호우의 강도가 세지고 있어 산사태가 잘 일어난다고 해요.
산림청 분석 결과, 우리나라 산사태는 산의 경사가 30~35도인 곳에서 많이 발생하고, 활엽수림보다는 침엽수림이 많은 곳에서 자주 생긴다고 해요.
실제 1980년대 연평균 231㏊였던 산사태 발생 면적은 1990년대 연평균 349㏊, 2000년대 연평균 713㏊로 20년간 3배나 늘어났어요.
이 때문에 산림청은 산사태를 막기 위해 안식각을 크게 해주는'사방(砂防) 사업'을 한답니다.
사방사업에는 나무를 심어서 땅을 잡아주는 산림녹화와 토목 공사를 통해서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강 작업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1980년대 이전엔 녹화 사업을 주로 진행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두 가지를 결합해서 시행해요.
특히 사방댐은 산속 계곡 등에 설치하는 폭 30m, 높이 4m 정도의 작은 댐인데,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흙·돌을 막아주고 물의 속도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요.
주일우·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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