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중요한 선택, 아침에 해야··· 오후엔 지쳐서 대충 결정한대요
피곤할 땐 즉흥적으로 판단하거나
일단 결정을 미루고 보게 된대요
이스라엘 교도소 가석방 심사 보면
체력 온전한 아침엔 65%로 높고
시간 지나며 지치자 20%로 떨어져
육체가 지치면 정신도 쉬려고 하죠
그림=박다솜
'결정 장애'라는 말, 다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걸 뜻하죠.
사실 선택은 힘든 일이에요.
정신적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심신이 지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게 좋아요.
피곤할 때는 심사숙고해 좋은 결정을 내리기보다
즉흥적으로 판단하거나 일단 결정을 미루고 보게 되기 쉬워요.
▶골라라, 그러면 지칠 것이다
진 트웽(Twenge)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테니스공, 양초, 티셔츠, 껌, 콜라 깡통 등 수백 가지 물건이 놓여 있는 탁자를 하나 준비했어요.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어요.
첫 번째 그룹은 '결정자' 그룹, 두 번째 그룹은 '비(非) 결정자' 그룹이었습니다.
결정자 그룹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죠.
"여러분에게 매번 두 개씩 임의의 물건을 보여 드릴게요.
그 둘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는지 결정해주세요."
비결정자 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각각의 물건을 보고 의견이나 최근 사용 경험을 적어주세요."
실험이 끝나고 두 그룹 중 누가 더 지쳤는지 테스트를 해봤어요.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에 손을 담그게 한 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시간을 측정했지요.
이건 심리학에서 의지력(자제력)을 측정할 때 쓰는 대표적 방법입니다.
찬물에서 손을 빼고 싶은건 본능적인 충동인데, 그에 맞서 싸우려면 의지력이 필요해요.
육체적으로 지쳐 있을수록 의지력도 떨어져 손을 빨리 빼지요.
실험 결과 결정자 그룹이 훨씬 손을 빨리 뺐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만큼 결정하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무작위로 고른 물건 둘 중 하나를 추리는 건
얼핏 보기에 대단한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최근 사용 경험을 글로 써야 했던 비결정자 그룹이 훨씬 두뇌를 많이 쓸 것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실험 결과 결정자 그룹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훨씬 피곤해했다는 게 드러났어요.
물건 둘 중 하나를 잇달아 결정하는 작업이 사람을 지치게 한 겁니다.
아무리 사소한 결정이더라도 결정은 역시 힘든 거예요.
◆피곤할수록 결정 미뤄
그렇다면 사람이 지치는 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줄까요.
조너선 레바브(Levav)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이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판사들의 가석방 심사 결과를 분석해봤어요.
가석방 심사는 범죄자가 충분히 죄를 뉘우쳤다고 생각하면
형기를 꽉 채우지 않고도 사회로 돌아가게 해주는 제도예요.
연구진은 무작위로 선정한 판사 4명의 심사 결과를 분석했어요.
체력이 온전한 이른 오전에는 가석방 비율이 평균 65%로 가장 높게 나왔어요.
그런데 슬슬 출출해질 오전 11시~정오 사이엔 가석방 비율이 15~20%로 크게 떨어졌죠.
심지어 점심시간 직전 15분만 놓고 보면 가석방 비율이 0% 수준으로 내려갔어요.
가석방을 시키는 것은 '이 사람은 이제 괜찮다' 는 판단을 요구합니다.
가석방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일단 교도소에 두고 지켜보자' 고 결정을 보류하는 걸 뜻하죠.
지친 사람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쉬려고 하며 움직이려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평소보다 선택과 결정이 어렵다면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좋은 결정은 언제 가능할까요? 대부분 오전입니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몸도 마음도 팔팔한 오전에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후회를 최소화하고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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