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美와 통상조약때 만든 '이응준 태극기', 박영효보다 넉달 앞서
회담서 청나라 국기 '황룡기' 쓰려다
속국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국기 제작
박영효가 일본서 사용한 태극기가
오랫동안 최초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이응준의 태극기 도안 발견
지난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특전사 고공팀이
'데니 태극기' 를 들고 헬기에서 내려올 계획이었지만,
날씨 때문에 취소됐다고해요. 1890년 제작된
데니 태극기는 국내에 현존하는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안병현
▽고종이 미국인에게 하사한 '데니 태극기'
"조선은 청나라의 속방(屬邦)이 아닙니다.
청나라의 간섭은 부당한 것이며,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입니다."
'속방' 이란 겉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경제·군사면에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를 말합니다.
저서 '청한론' 을 통해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은 오언 데니(1838~1900)라는 미국인이었어요.
그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 임금의 외교 고문을 지냈지요.
이 시기는 갑신정변(1884)부터 청일전쟁(1894)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유독 심하게 할 때였습니다.
데니는 조선 편에 서다가 청나라의 미움을 받아 고문자리에서 파면되고 말았답니다.
이때 미국으로 돌아가는 데니가 가져간 것이 바로 '데니 태극기' 로 알려진 태극기였어요.
작별을 아쉬워한 고종 황제가 하사했다는 얘기도 있지요.
가족 등이 대를 이어 간직하고 있다가 1981년 한국에 기증했어요.
▷1882년 최초의 태극기는 '이응준 태극기'
실제 깃발로 국내에 남아 있는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데니 태극기' 지만,
그렇다고 이때 태극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오래도록 1882년 9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영효가
배 위에서 그려 일본 숙소에 게양한 태극기를 최초의 태극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해양국가들의 깃발' 이라는 책에 태극기가 실려 있었는데,
4괘의 왼쪽과 오른쪽만 바뀌었을 뿐 지금의 태극기와 거의 같은 모양인 것이 2004년 확인됐어요.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시점보다 두 달이나 앞서 미국 책에 태극기가 실렸던 것이죠.
학자들은 "이 태극기는 1882년 5월 22일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맺은 조·미 수호통상조약 당시
성조기와 함께 내걸린 조선 국기로 보인다" 는 분석을 내놓았어요.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가 발굴한 당시 미국 측전권대사 로버트 슈펠트(1821~1895)의 기록을 보면
조선이 자신의 권고에 따라 미국 군함 스와타라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었거든요.
슈펠트는 조선이 당시 청나라 국기였던 황룡기(노란색 바탕에 푸른 용이 그려진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기)를
내걸면 '중국의 속국' 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죠.
이에 김홍집의 명을 받아 역관 이응준(1832~?) 이 태극기를 만들었죠.
이 태극기가 '해양국가들의 깃발' 에 실린 태극기와 같은 모습이었다는 근거는 없었는데,
지난해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 소장 '슈펠트 문서 박스' 에서
태극기 그림을 발견하면서 의문이 모두 풀렸어요.
슈펠트 관련 문서를 모아 놓은 이 상자에서 나온 태극기는 1882년 7월
'해양국가들의 깃발' 에 실린 태극기와 똑같았어요.
조·미 수호통상조약 때 걸린 조선 국기를 보고 그린 것이었죠.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최초의 태극기 도안 '이응준 태극기' 입니다.
결국 태극기를 처음 만든 실재 인물은 철종 임금의 부마 박영효가 아니라,
중인 신분의 역관 이응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태극기는 1883년 3월 국기로 정식 반포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는 1884년 만들어져 현재 미국에 있는 '주이 태극기' 입니다.
[이응준, 태극기 그려서 수감? 청나라의 보복이란 설도 있죠]
이응준은 1850년 역과(외국어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해 역관이 됐어요.
중국어에 능통해 조·미 수호통상조약 때 영어를 아는
청나라 역관을 통해 미국과의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양반이 아니었지만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통해
선진 문물을 남보다 앞서 접한 '신진 지식인' 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응준은 1889년 청나라 원세개의 고발로 체포돼
의금부에 수감됐고, 이후 행적에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조미조약 때 청나라 국기를 쓰는 대신 태극기를 만든 것에 대한
청나라의 보복이란 시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신문은 선생님)
기획 및 구성 : 양지호 기자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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