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줄이면 충분하다. 영양제를 챙겨 먹듯 매일 단 한 줄의 글귀를 읽거나 일기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출판업체 민음사가 신축년 새해를 맞아 출시한 ‘인생일력(日曆)’ 달력은 출시 한 달 만에 동났다.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그날 날짜와 함께 논어·맹자 등 동양 고전에 나오는 문구 한 줄을 삽입했다. 1월 31일 일력에는 ‘꾸밈 속에 삶의 길이 열리리라. 적당한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란 주역(周易)의 문장이 적혔다. 복고풍(레트로) 감성을 적용한 이 달력은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댁에 걸린 달력처럼 날마다 페이지를 찢어 넘기며 사용한다.
‘하루 달력'을 찾는 소비자가 해마다 늘면서 올해 처음으로 1만부 넘게 제작했지만 품귀다. 민음사 관계자는 “지난해 8000부에서 올해 1만3000부로 제작 수량을 늘렸지만 품절됐다”며 “찾는 고객이 많아 제품을 납품한 지방 동네 서점까지 연락을 돌려 재고를 온라인으로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문장 영어 표현이 들어간 ‘올리버쌤의 영어회화 일력 365’, 매일 한 줄 문장을 필사하는 ‘하루 한장 365 인문학 달력’도 인기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일력 상품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62% 증가했다. 새로운 형식의 달력을 찾는 주요 구매층은 20·30세대다. 출판 관계자는 “영상과 이미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젊은 소비자들은 효율적인 소비를 중시한다”며 “10초 내외의 짧은 동영상 소셜미디어인 틱톡이나 240자 글자 제한이 있는 트위터를 즐기듯 숏폼(short-form) 형식의 짧은 문자 콘텐츠가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기장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매일 한 줄만 써도 되게끔 부담을 낮춰 글쓰기 습관을 들이도록 유도하는 게 특징이다. 스마트폰으로 한 줄 일기를 간단히 쓸 수 있는 ‘데이그램’은 지난 2015년 출시돼 지금까지 100만건의 내려받기를 기록한 대표적인 일기 앱(애플리케이션). 사용료 500원을 내야 하는 유료 앱이지만 올해에도 하루 평균 1000명이 앱을 설치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개발사 솔티크래커스 정의형 대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일기 쓰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하루 한 줄만 쓰는 종이 일기장도 등장했다. “지금 내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이란 질문에 한 줄로 답을 적으며 하루를 정리하게 하는 ‘자문자답 한 줄 질문 다이어리’ 제품군이다.
부담 없는 독서를 내세우는 ‘하루 한 줄’ 교양 서적도 서점가에 퍼지고 있다. 독자들은 방대한 지식을 한꺼번에 담은 교양서보다 한 줄, 혹은 한 페이지에 조금씩 덜어낸 교양서를 찾고 있다. 매일 한 줄씩 인문학 문장을 읽고 필사해보는 책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은 지난해 예스24 청소년 공부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예스24 관계자는 “‘1일 1교양' 형태의 인문 교양서가 인기를 끌자 예술 분야에서도 유사한 형식의 도서가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와 미술 등 다양한 분야 지식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는 지난해 종합 베스트셀러 19위를 기록했다. 하루에 한 곡 클래식 이야기를 읽거나 명화를 보는 교양서도 등장했고, 노랫말이나 영화, 희곡 대사 한 줄을 조망하는 ‘한줄도 좋다’ 시리즈도 2019년 제1권을 펴낸 뒤 지난달 제7권이 나왔다.
발췌 : 조선일보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