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관광 생소하던 19세기, 중산층 패키지여행 내놔 '대히트'
우연히 기차표 구매대행하면서
여행 사업의 가능성 내다봤어요
英군인 수송하는 여행사는 있었지만
다수의 국민 대상으로 한 것은 최초
런던 만국박람회 때는 15만명이 이용
최근 매출 부진으로 178년만에 파산
영국 여행사 '토머스 쿡' 이 지난달
21일 파산했습니다. 이 회사의 여행상품을
이용하던 영국인 14만 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죠. 영국 정부는 이들을 귀환시킬
수송작전을 짜서 지난 7일까지 본국으로
데려왔어요, 토머스 쿡은 영국 중산층 관광객을
유럽으로 데려간 최초의 여행사로 꼽힙니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 여행자 수표 발급, 외화 환전 서비스,
여행 책자 발간 등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여러 여행 관련
서비스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파산은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인 거죠.
여행사 '토머스 쿡' 은 19세기 영국 레스터의 사업가 토머스 쿡(1808~1892·작은 사진)이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든 회사입니다. 그는 사업가이기 전에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어요.
당시 그는 술을 마시지 말자는 '금주 운동' 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1841년 기차 편을 빌려 금주 운동가 484명과 함께 레스터에서 약 18km 떨어진
러프버러를 하루 일정으로 다녀옵니다. 사람들은 열차 삯과 수고비로 그에게 1실링씩을 냈어요.
이 경험을 통해 토머스 쿡은 여행 사업의 가능성을 깨달아요.
물론 토머스 쿡 등장 이전에도 여행과 여행사는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람들이 관광을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해요.
17세기에 유럽에서는 '그랜드투어' 가 유행이었습니다.
상류층 젊은이들이 유럽을 몇 년씩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풍습이었죠.
토머스 쿡은 사실 최초의 여행사도 아닙니다. 영국만 봐도 1758년 설립된 '콕스 앤드 킹스(Cox&Kings)' 라는 여행사가 있어요.
영국 군인을 인도로 수송하는 역할을 했는데, 토머스 쿡보다 80년 이상 빨리 만들어졌죠.
토머스 쿡
여행사 '토머스 쿡' 이 1901년 내놓은 여행 책자입니다. 이 여행사는 19세기 이집트, 북아메리카 등으로 패키지여행
사업을 확장합니다. 178년 역사를 자랑했지만 지난달 파산했어요.
토머스 쿡이 혁신적이었던 것은 영국 '중산층' 의 여행 수요를 파악하고, 이들을 위한 여행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철도가 놓이면서 일반 대중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됐어요.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 영국의 한 별볼일없는 마을에서
역시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다른 마을로 여행객을 수송하기 위해 열차표 구매 업무를 대행한 순간,
사업가 쿡은 이 사업의 잠재력을 깨달았던 겁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다수 국민이 평생 자기 마을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 살던 시대에 말이죠.
토머스 쿡은 1845년부터 본격적으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 다른 지역으로 여행 사업을 확장했어요.
토머스 쿡은 점차 성장했고, 10년 뒤인 1851년 영국 런던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는 15만명의 고객이 토머스 쿡을 통해 런던을 다녀갑니다.
1855년에는 브뤼셀, 쾰른, 라인, 하이델베르크, 바덴바덴, 스트라스부르, 파리를 돌아보고 오는 유럽 패키지여행이 시작됩니다.
평범한 중산층 영국인들이 배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넜어요.
1865년에는 6000km가 넘는 거리를 기차로 이동하며 북아메리카를 돌아보는 투어도 나왔습니다.
쿡은 1869년 기선 두 대를 빌려 '이집트 나일강 투어' 를 시작했고, 1872년에는 장장 8개월의 '세계 여행' 상품도 내놓습니다.
1892년 쿡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번창시켰습니다.
토머스 쿡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사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세계대전보다 더 큰 도전이었습니다. 외국 기업에 인수되기도 하고,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덩치를 키워가면서 2003년에는 토머스 쿡 항공사까지 나왔죠.
안타깝게도, 다른 많은 분야처럼, 처음으로 시장을 개척한 회사가 끝까지 앞서 나간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토머스 쿡은 2000년대 들어 뒤처지기 시작했어요. 패키지여행 시장은 작아지기 시작했고,
오프라인 점포 위주의 영업 방식은 온라인 예약 방식에 적응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저가 항공사가 등장하면서 토머스 쿡이 운영하는 항공사 역시 점점 더 혹독한 경쟁에 내몰렸어요.
그리고 지난달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오늘날 눈높이에서 여행사는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어요.
인터넷으로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하고, 세계 곳곳의 호텔을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예약할 수 있죠.
그렇지만 토머스 쿡 시대에는 모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여행' 이란 개념조차 생소했던 사람들을 상대로 토머스 쿡은 '여행 산업' 을 일궈낸 거니까요.
19세기에 영국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이집트 등 세계 곳곳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글로벌 마인드도 보여줬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오는 31일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 를 강행하겠다고 외치고 있어요.
유럽을 떠나 고립을 택하겠다는 거죠. 이를 앞두고 한때 영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기업, '글로벌 마인드' 를
앞세웠던 기업이 파산했습니다. 기분 나쁜 전조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기획 및 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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