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어떤 맛이냐고?
겉모습은 보통 닭고기 튀김
씹어보니 백숙처럼 부드러워
닭고기 분말에 각종 영양소 섞어
반죽으로 제조, 3D 프린터에 넣어
독일 등 유럽 노인들에게 유용해
미슐랭 식당도 3D 프린터
네덜란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남는 음식 재료를 장식으로 활용
쓰레기 줄이고 음식 더 군침 돌게
김주영 기자
<81> 유럽 '3D 프린터의 맛'
푸드테크에 관심 많은 이예지씨
3D 프린터로 찍어낸 닭다리와 콩 독일 브레머하펜에 있는 푸드테크 기업인 바이오준 프로젝트 매니저 앤 크리스틴과 이예지(오른쪽) 탐험대원이 3D 프린터로 만든 닭고기와 콩을 시식하고 있다.
음식을 인쇄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현재 기술로 피자, 스테이크, 파스타, 초밥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맛을 평가해주세요." 프로젝트 매니저 앤 크리스틴이 닭다리 튀김을 내밀며 시식을 권했다.
겉모습은 일반 닭고기였다.
한 입 베어 물자 백숙처럼 오물오물 씹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졌다. 뼈는 없었다.
앤이 웃으며 이야기 한다. "이 닭고기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음식입니다. 눈치 못 채셨어요?"
독일 브레머하펜에 있는 바이오준(Biozoon)은 음식을 조리하지 않고 '인쇄' 하는 기업이다.
오븐이나 팬 등 조리 도구부터 사람이 하는 셰프 역할까지 3D 프린터가 대신 맡는다.
원리는 일반 3D 프린터로 장난감이나 볼펜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인쇄 카트리지가 가루로 된 식용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다.
식용 카트리지를 담은 3D 프린터 노즐이 인쇄하듯 얇은 반죽을 층층이 쌓아 모양을 완성하면 음식이 만들어진다.
현재 기술력으로 피자, 스테이크, 파스타, 초밥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앤이 말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만든 닭고기인지 3D 프린터가 만든 것인지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달 찾은 바이오준에선 3D 프린팅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음식 연구가 한창이었다.
노인이 대상이고 닭고기가 대표 상품이다.
이가 약한 노인을 위해 닭고기를 분말 형태로 만든 뒤 이를 물, 비타민 등 영양소와 배합해 걸쭉한 반죽 형태로 만든다.
반죽을 3D 프린터와 틀을 이용해 얇게 인쇄한 뒤 오븐에서 익히면 닭다리가 만들어진다.
마트히아스 퀴크 바이오준 CEO는 "맛, 영양, 모양 등 개인이 원하는 맞춤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게 3D 프린터의 가장 큰 장점" 이라고 했다.
◇ 필요 영양소 골라 담는 맞춤형 식단
3D 프린터 등 푸드테크를 활용한 맞춤식에 대한 관심은 10여년 전 시작됐다.
독일·네덜란드·덴마크·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이 기업 14곳과 손잡고
맞춤식 프로젝트인 '퍼포먼스' 를 2012년 시작했다.
3D 프린터로 실제 음식과 질감, 모양이 같은 요리를 만든 후 식품 섭취 관련 데이터를 모아
개인마다 다른 필요 영양소를 맞춤형으로 첨가하는 게 프로젝트 목표다.
노인이나 환자 등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이들이 주요 고객이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75세 마라 할머니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건강검진 결과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퍼포먼스 참여 업체이기도 한 바이오준은 3D 프린터를 활용해 단백질 파우더와
마라에게 필요한 철분, 비타민 등을 섞어 닭고기 형태 음식을 만든다.
유제품을 소화 못 시키는 유당불내증이 있어 우유 없이 음식을 제조하고
땅콩 알레르기도 고려해 다른 견과류로 대체한다.
만들어진 음식은 이름표가 붙어 요양원까지 배송된다.
마트히아스 CEO는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영양소를 쉽게 첨가하고 뺄 수 있다" 며
"곧 맞춤식이 밥상을 점령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인쇄 속도 등 몇몇 제약 탓에 상용화 단계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바이오준도 3D 프린터 외에 따로 닭다리 모형 틀을 만들어 모양을 잡는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이 몰리면서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3D 음식 프린팅 시장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2023년까지 5억2560만달러(약 6245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구글은 농업·식품 분야를 차세대 산업으로 보고, 농업 관련 빅데이터 분석 전문 업체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농업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 업체 그래뉼러에 각각 1500만달러, 187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식품 산업이 기술 진보를 빠르게 따라가는 셈이다.
◆ 음식 쓰레기 줄이는 효과도
3D 프린팅은 환경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주목받는다.
유엔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생산 식량 40억t 중 3분의 1이 버려진다.
연간 1조달러(약 1183조원) 어치다.
3D 프린터 제작 업체 '업프린팅' 의 엘제린데 판 돌르브르트 CEO는
"남거나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를 3D 프린터 등 푸드테크 기술을 활용해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재사용할 수 있다" 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미슐랭 1스타 식당인 '데 카르펜돈크세 후베' 는 3D 프린터로 음식 장식을 만든다.
레스토랑 로고 'KH', 꽃 장식, 자주색 벌집 모형을 만들어 식욕을 돋우는데,
과거에는 너무 질겨서 버리던 비트뿌리나 식전 빵에 서빙됐다가 남은 버터 등이 재료로 활용된다.
이전엔 그냥 버리던 부분이다.
잉그리드 판 에흐엠 데 카르펜돈크세 후베 대표는 "창의적인 음식을 만드는 동시에 음식 쓰레기를 20%가량 줄였다" 고 했다.
수석 요리사 브라운이 능숙하게 3D 프린터 전원을 켰다.
각종 재료를 갈아 넣은 반죽을 넣자 프린터 화면에 레스토랑 로고, 별, 꽃 등 그림 파일 40여개가 떴다.
곰 그림을 선택하자 프린터 노즐에서 인쇄하듯 곰 모양을 그려 나갔다.
완성된 모형을 오븐에 넣고 구워내자 고명이 완성됐다.
3D 프린터를 만드는 '프린트2태이스트' 게르트 펑크 CEO는
"수많은 음식 재료를 인쇄 카트리지처럼 가루로 보관했다가 영양과 선호에 따라 요리할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졌다"며
"조만간 3D 프린터가 전자레인지처럼 보급돼 전통적 주방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 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청년 미래탐험대 100
브레머하펜(독일)·에인트호번(네덜란드)=
이예지 탐험대원, 취재 동행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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